노동자의 안전을 좌우하는 것은 CEO의 의지
1802년 미국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Brandywine 강가에 한 화약공장이 세워지고, 이어 화약공장 안에 집 한 채가 들어선다. 그 집에 한 가족이 생활하게 되는데, 바로 화약공장 사장과 가족들이다. 몇 년 후 화약공장이 폭발해 수십 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가족이 다치는 큰 사고가 발생하게 된다. 사장은 화약공장을 새로 정비하고 무너진 집을 보수해 그 집에서 예전처럼 그대로 생활을 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소설도 영화도 아닌, 바로 듀폰의 창업주인 E.I. 듀폰의 실제 이야기다. 듀폰은 왜 위험한 화학공장 안에 집을 짓고 살았을까? 더구나 폭발사고 후에는 화약공장을 벗어난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것이 당연한 것임에도 굳이 또 그 위험한 곳을 고수했을까?
듀폰의 안전철학을 이해한다면 이 모든 행동들이 수긍이 갈 것이다. 19세기 초기에는 노동자들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면서 일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듀폰의 화학공장 설립 초기에는 그러한 노동자들로 인해 크고 작은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게 되자, 듀폰은 사고 방지를 위해 노동자들이 일을 할 때 음주와 흡연을 금지하는 등 안전규칙을 제정하게 되고, 여기에 더해 노동자들과 똑같은 위험성을 체감하고 직접 안전관리를 하고자 화학공장 안에 집을 짓고 가족과 생활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무모하리만큼 안전을 생각한 것이지만 일하는 사람과 현장에 대해 직접 안전관리를 실천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와 솔선수범을 보여준 것이다. 특히 새로운 설비의 가동 시에는 최고경영자가 먼저 직접 운전해 보고 안전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직원을 투입해서는 안 된다는 독특한 안전관리 규칙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듀폰의 경영철학을 고스란히 보여준 것이다. 결국 듀폰은 200년이 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2세기를 넘어서 현재 우리나라 경영자들의 안전 경영철학은 어떠할까? 중대재해처벌법이 2022년 1월27일 시행된 지 7개월이 지났다. 법 시행 전 중처법 적용대상 1호가 어디가 될지 초미의 관심 대상이었고, 시행 첫날부터 일부 대형 건설사에서는 ‘처벌 1호’를 피하기 위해 장기간 공사를 중단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대형 로펌에서는 중처법 대응을 위한 별도 팀을 구성하고 기업체에 홍보를 하고 있고, 기업체에서는 대형 로펌에 자문을 구하고 있다. 왠지 산업재해 예방이 아닌 처벌을 면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다.
경영자들은 모든 일하는 사람이 안전하게 일하고 편안한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안전이 최우선시 되는 경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일하는 사람과 현장에 세심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중대재해처벌법의 제정 취지이다. 처벌을 위한 법이 아니라는 것에서부터 출발을 해야 한다.
시간을 거슬러 약 200년 전 듀폰의 화약공장에서 발생한 폭발사고가 우리나라 기업체 CEO들이 부담스러워하는 중처법에 과연 적용이 될지 생각해 보자. 어쩌면 중처법에 대한 부담보다는 안전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