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은 가을이 정점에 있는 달이다. 단풍은 붉게 물들고 샛노란 은행잎은 가엾이 지니 가을의 운치가 절정에 달한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엔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라’고 했던 서정주 시인의 표현처럼 가을은 그리움의 계절이기도 하다.
그러나 11월은 평가가 시작되는 달이기도 하다. 대입 수험생들에게 11월17일은 운명의 날이다. 계절이 오고감을 모른 체 앞만 보고 달려온 그들에게 운명의 날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진인사 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했으니 노력한 만큼 성적이 나왔으면 좋겠다. 수험생 모두에게 신의 축복이 있기를 기원해본다.
평가는 공무원도 피해갈 수 없다. 지난 1년간 추진했던 각종 사업에 대한 평가가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중앙행정기관의 국정과제 추진 실적을 평가해 그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니, 각 기관에서는 평가에 대비하느라 분주하다. 공무원 개개인도 12월이면 실적과 역량을 평가받게 되니 이래저래 마음이 무거운 시기이기도 하다. 모두가 평가 없는 세상을 꿈꾸지만 성과를 요구받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일선에서 병무행정을 직접 수행하고 있는 지방병무청 직원들은 국민의 평가와 직접적으로 연계돼 있다 보니 많은 고충이 따른다. 그 중 가장 애로를 느끼는 것은 국민신문고를 통해 접수되는 민원이다. 방문 민원이나 전화 상담은 상세한 설명과 안내를 통해 민원이 해소되고, 그것으로 종료되지만 국민신문고 민원은 반드시 평가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다행히 민원이 해결되어 ‘매우 만족’으로 평가를 받게 되면 보람도 느끼고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지만, ‘불만’으로 평가 받는 경우에는 상황이 다르다. 불만을 만족으로 전환시키지 못하면 기관 전체의 평가에 불리하게 작용하게 되기 때문에 매우 곤혹스럽다.
급속한 정보화의 발달로 세계가 하나 되는 추세이다 보니 국민의 요구는 갈수록 다양화되고, 주장하는 목소리마저 커지다 보니 일선의 공무원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종종 발생한다. 물론 공무원도 새로운 사례에 대해서는 법규 마련 등 선제적 대응을 해야 할 것이고, 다양화된 사회인만큼 획일적인 법규 적용보다 사례별 맞춤형 적용이 필요하다는 전향적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성숙한 국민의 자세가 필요하기도 하다. 국민신문고 민원 중 우리가 최선을 다했음에도 자신의 민원이 해결되지 않았다고 해서 ‘매우 불만’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럴 경우 우리는 당황하게 되고 심한 좌절감에 빠진다.
병역 판정 결과에 불만이 있는 경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살피지 않은 사항이 있는지 다시 확인해 보고, 이의를 제기하는 절차나 방법을 안내하는 것뿐인데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매우 불만’으로 평가한다. 그러면서 막무가내로 판정 변경을 요구하는데 이런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또한 각종 증명서를 발급할 때에도 기록에 없는 내용을 기재해 달라고 떼를 쓰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공무원에게 불법행위를 강요하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공무원이 법과 규정을 벗어나서 일처리를 하는 경우는 매우 제한적이다. 혹자는 공무원이 그렇게 융통성이 없느냐고 질타하지만 융통성도 법규 내에서만 제한적으로 행사될 수 있을 것이다. 역으로 공무원이 운신의 폭이 넓으면 부정과 부패가 개입될 소지가 있어 오히려 선의의 국민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 따라서 공무원의 준법정신은 강조되어야 하며, 이로 인해 법과 규정이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적용될 때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구현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병무청 직원들이 법규에만 얽매여 안일하게 일을 하지는 않는다. 최근에도 해결 곤란한 민원을 직원이 유관기관에 적극적으로 조회하여 민원을 해결하자 “해당 민원과 관련하여 국방부, 육군본부 등 여러 기관에 문의 하였으나 성실한 답변을 받지 못하였는데 병무청에서는 빠른 민원해결을 위하여 타 부처에 적극적으로 협조를 구하는 등 최선을 다해주셨고 결국에는 민원을 해결해 주셨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감사 답글을 달았다는 내용을 들었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무조건 떼를 쓰는 국민신문고의 역기능도 있지만, 긍정적인 측면에서 국민신문고의 순기능도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민원인이 만족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고, 불만족할 경우에는 만족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애쓰는 우리 직원들의 모습을 보며 이것이 바로 공직자의 참다운 자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한편으로 이제 우리 국민들도 공무원의 설명과 안내에 귀를 기울여 처리 불가능한 민원에 대해서는 수긍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우리 직원들이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어주시고 열심히 일한 직원에게는 따뜻한 격려와 위로를 해 주시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