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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어른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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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어른에게 달려있다
  • 최병요 칼럼니스트
  • 승인 2011.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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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병요 칼럼니스트
1970년대 초 터키의 북동부지역에서 설형문자가 새겨진 다량의 점토판이 발견되었다. 판독 결과 기원 전 4000년경에 융성했던 히타이트 제국의 원로원 회의록임이 밝혀졌다. 판독한 내용 가운데 하나가 흥미롭다. ‘요즘의 젊은이들 버릇이 없어서 장래가 걱정된다’였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가 6000년 전에도 원로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 중의 하나였다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어느 시대이든 젊은이들의 버르장머리는 항상 어른들을 고민케 했는가 보다. 버릇없던 젊은이가 어른이 되면 또 젊은이의 버릇을 걱정해야 하는 되돌기가 연년세세 이어져 왔다니, 그래도 세상은 망하지 않고 제몫을 채우면서 발전해왔다니 경이로울 뿐이다. 

역사가 그렇다고 해서, 젊은이들의 버르장머리를 모른 채 눈감고 있어도 세월의 약발을 받아 자연치유 되리라고 안도하는 것은 엄청난 오산이다. 젊은이의 버릇없음은 결코 세월과 자연치유로 교정될 수 있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언급한 히타이트제국 원로들이 그랬던 것처럼 시간과 정력을 쏟는 관심이 항상 뒤따라야 가능하다. 

우리는 흔히 ‘미래는 청소년에게 달려있다’고 말하지만 어른들의 자기기만이고 핑계하려는 구실에 다름 아니다. 청소년이 미래의 주인공인 것은 틀림없지만 그 미래를 가꾸어주는 책임은 어른에게 달려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집트와 그리스의 찬란한 문화, 당나라와 로마제국의 흥성이 장구했던 것은 원로들의 지혜와 솔선수범, 그리고 주인의식이 밑거름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어른을 존경하고 원로의 가르침을 경청하는 것은 미래를 과거의 역사에서 확인하는 지혜로운 모습의 단면인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의 어른들은 보기 민망할 정도로 초라하고 또 의기소침해 있다. 국가의 노인정책이 건강문제와 생계 지원에 치우쳐있을 뿐 가장 큰 타격인 소외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가정 안에서조차 ‘있어도 괜찮고 없어도 좋은’ 정도의 대접이 고작이어서다. 어른이 가지고 있는 지혜와 경험이 국가의 훌륭한 자원이며 불확실한 미래의 확실한 열쇠임을 외면한 채 오기와 뚝심과 배짱과 신명으로 대처할 수 있다고 믿는 어리석음 때문이다. 

물론 어른 당사자의 무기력과 아집이 자초한 면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미래의 설계에 참여시키면 으레 지난날의 가난과 역경을 설파하느라 시간을 소비하고, 젊은이의 기발한 창의력에 박수를 보내기는커녕 허무맹랑하다며 핀잔하고, 술냄새 담배냄새 노인냄새를 피하려는 젊은이에게 무시한다며 역정을 내고, 사소한 일에도 삐치고 고집부리고 비아냥거리고 목청을 높이는 것이 기피와 냉대의 원인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굼뜨더라도 의연하게, 손을 내밀 때 겸허하게, 필요할 때 적극 동참하는 열정으로 사표의 가치를 측량토록 하는 것이 이 시대 어른들의 제일 화두다. 

절제 있는 가정, 질서 있는 사회, 품격 있는 나라를 실현해 나가려면 어른을 대접하고 원로를 두려워하여 그분들의 명철을 귀담아듣는 것보다 더 좋은 명약은 없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 요즈음이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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