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인의 평균 수명은 19세였고, 16세기 유럽인의 평균 수명은 21세에 불과했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발걸음을 떼기까지 보통 1년이 걸린다. 게다가 스스로 먹이를 취하거나 적으로부터 자신의 생명을 지키고 2세를 출산할 수 있는 나이까지 성장하려면 최소한 15세는 되어야 한다. 원시시대의 평균 수명이 20세 안팎이었다고 할 때, 인간이 생태계에서 적들로부터 생명을 지키고 종족을 보존하기에는 턱없이 불리해 보인다.
하지만 인간은 모든 동물과의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았고 꾸준히 수명을 늘려왔다. 지금의 인류에게는 더 이상 생존을 위협하는 적은 인간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평균 수명이라고 하는 통계 숫자에는 전쟁이나 기아·전염병 등으로 인한 인류의 집단 사망의 결과가 포함되었을 것이므로, 평균 수명과 인간 개개인의 수명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평균 수명의 연장이라고 하는 것은, 한 인간이 건강하게 살다가 자연사하게 되는 최고치의 수명과 인간집단의 평균 수명 간의 간극을 좁혀온 과정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장수의 염원을 품는 게 가능했다고 할 수 있으며, 고금의 역사가 말해주듯 인류의 가장 큰 소망 중 하나는 장수였다.
그것은 진시황의 불로초처럼 상징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실제적인 과학적 성과로 나타나기도 해서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인간의 평균 수명은 80세를 육박하게 되었다. 이 수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80세 이상을 산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렇게 염원하던 장수의 꿈이 거의 이뤄졌고 아직도 수명 연장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는데, 사람들은 오래 살게 된 것에 대해 별로 행복해하는 것 같지 않고 기껍게 받아들이지도 않는 것 같다. 오히려 갑작스럽게 닥친 재난처럼 호들갑스럽게 연금의 고갈을 걱정하고 텅 비어 버리거나 질병으로 시달릴지도 모를 노후에 대해 거의 두려움에 가까운 염려를 하기도 한다.
이제 인간은 그토록 오랫동안 꿈꿔왔던 장수가 단순히 수명을 늘리는 것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될 것 같다. 고통은 오랫동안 기억되고 기쁨은 찰나에 스쳐간다. 그래서 많은 인간이 아직 오지 않은 모든 가능성에 대해 불안과 두려움을 먼저 생각한다.
출산율은 점점 떨어지고 노인은 점점 늘어나는 요즘, 장수는 인간에게 고려장처럼 불행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풍요로운 나라를 만들고 사회안전망을 잘 구축한다면 행복이 될 수 있다.
저축은 과거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담당해 왔다. 우리 국민들이 어려운 경제상황에서도 근검절약을 생활화함으로써 경제성장에 큰 기여를 했다. 저축을 통해 조달된 자금은 기업의 공장 건설이나 설비 투자 등의 투자재원으로 사용됨으로써 우리 경제가 확대재생산을 통해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근검절약 정신과 저축에 대한 열의가 많이 퇴색했다. 오랫동안 구두를 닦아 1억 원을 모았다는 아름다운 저축 미담 사례보다는 과도한 해외여행이나 사치성 소비재 수입이 크게 증가했다는 뉴스를 더 자주 접하게 되었다.
개인이 소비를 하지 않고 저축만 하는 것도 다소 문제는 있다. 즉, 사회 전체로 볼 때 일정한 소비를 하여야만 생산 활동이 원활해지고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국민경제를 위해 건전한 소비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 있으며, 특히 전 세계적인 경기 부진으로 해외 수요가 크게 위축될 때는 건전한 내수 확대를 통해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 전체적 측면에서 보면 저축이 절대적인 선(善)은 아니지만, 개인에게 있어선 저축은 언제나 순기능만을 갖는다.
근래 평균 수명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개인의 노후대책이 우리 사회의 주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급속한 노령화로 2000년에 이미 고령화사회에 진입했고, 2018년쯤 고령사회, 2026년쯤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회안전망의 확대와 더불어 저축이 꼭 필요하다고 하겠다.
노후대책 측면에서 저축은 길어진 노후 생활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이다. 사회안전망이 열악한 우리의 현실에선 더욱 그러하다. 행복한 미래를 위해 건전한 소비도 필요하지만, 저축은 행복한 노후를 보장하는 주요한 수단이다.
맞벌이도 안하고 월급이 별로 많지도 않은 사람이 전업주부인 아내의 승용차까지 사주는 사람도 있고, 셋방살이를 하는 봉급생활자가 승용차를 굴리는 사람도 많다. 이런 사람들은 짧아진 정년과 길어진 수명을 생각하지 못하는, 노후를 대비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 대비 사회안전망이 다른 나라보다 열악하다. 이런 현실에서는 국민연금도 있기는 하지만, 노후대비를 개인이 꼭 해야 한다. 늙을수록 돈은 더욱 필요하다. 장수와 저축은 불가분의 관계라는 인식의 확산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망언다사(妄言多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