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의 영웅 더글러스 맥아더는 ‘작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받을 수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작전에서의 실패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로 그 영향이 승패에 그치지만, 적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 하는 것은 곧 성패와 직결되기 때문에 지적한 말이다.
그러니까 훌륭한 지휘관이라면 눈앞의 전투에서 이기는 것보다는 전쟁에서 이기는 지혜와 전략을 갖추어야 한다는 뜻이다. 지휘관의 본질적 임무는 전쟁이다. 적을 섬멸하고 적진을 초토화시키고 물자를 약탈하는 것은 본질적 임무가 아니라는 얘기다. 본질과 비 본질이 뒤바뀌면 비록 전투에서는 이기더라도 전쟁에서는 지는 엉뚱한 결과에 맞닥뜨리고 만다.
요즘 세간을 떠들썩케 하는 뇌물 스캔들을 보노라면 우리나라 공직자들이 이다지도 본질과 비 본질을 혼동하고 있나 싶어 생각난 맥아더의 말이다. 공직자뿐만이 아니다. 기업인·교육자·연예인, 심지어 운동선수들까지 돈의 노예가 되어 본분과 본질을 망각하고 있다.돈이 좋은 것이기는 하다. 단 정당한 방법으로 번 돈일 때의 얘기다. 그리고 좋은 일에 값지게 쓸 때의 얘기다. 그렇지 않고 부당하고 부정직한 방법으로 손에 넣어 자기 사치나 비도덕적인 방법으로 소비하면 돈은 나쁜 것이 되고 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
고위 공직에 오르거나 유명 유력인사가 되면 자기품위를 유지할 만큼의 물질은 보장을 받는다. 그 밖에 더 무슨 욕심이 필요한가. 본질인 자기 직무에 충실하면 명예를 얻게 되고 자기만족도 얻을 수 있다. 자기의 지식과 능력으로 최선을 다해 봉사하겠다는 것이 당초의 목표 아니었는가. 그런데 금방 본질을 내팽개쳐 버리고 비 본질에 정신을 빼앗기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이 본래의 자기모습이었단 말인가.
우리는 유력한 고위직에 오를수록 더 큰 뇌물 스캔들에 휘말려 하루아침에 부도덕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그대들의 모습에 진절머리가 난다. 우리는 여태껏 한 번도 그대들의 직무 나태나 직무 실패를 이유로 엄한 책임 추궁을 한 적이 없다. 그것은 병가지상사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그것만도 고마운 일일 터인데 고마워하기는커녕 직무와 직위를 미끼로 사욕을 채웠다니 그래서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를 더욱 화나게 하는 것이 있음도 알아야 한다. 그러한 뇌물 스캔들이 순간의 실수나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과성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되풀이해서 저질러졌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다. 관례로 굳어진 것인데 운이 나빠 적발되었다는 식의 뻔뻔한 변명 앞에서는 그만 기가 질리고 만다. 도대체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 그대들의 기름진 얼굴을 보노라면 측은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본질을 미끼삼아 받아든 뇌물로 그대들은 무엇을 했는가. 기껏 도박이나 하고 마누라 명품가방이나 사는 수준 아닌가 말이다. 모두의 손가락질에도 전혀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그대들의 비천함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대들을 용서하고 안하고는 별개의 문제다. 우리는 오직 그대들의 비천함을 두고두고 경멸하게 될 것이다.